정다운 무관심_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Albert Ca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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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ranger

이방인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제1부는 대개, 일에 찌든 직장인 나부랭이의 하소연으로 시작한다.

제1부 3장 오늘 나는 회사에서 일을 많이 했다.

제1부 4장 한 주일동안 나는 줄곧 일을 많이 했다.

제1부 5장 레몽이 회사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이렇게만 보면 꼭 노동소설인 것만 같지만, 꽤 흥미로운 서사구조를 갖고 있는 소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이다. 오랜만에 이 책을 꺼내든다.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일이 스무살 무렵의 일이니 십 년도 더 지난 일인 셈이다. 오랜만에 이 책을 꺼내들어 글을 써보려 하니 감회가 남다르다. 한때 절망 속에 빠져 있을 때, 뫼르소의 서사에 빠져들며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으니, 이 책이 내게 미친 영향이란 꽤나 크다 할 수 있다. 요즘엔 일과 집의 반복생활을 하다 보니, 주인공 뫼르소의 힘없는 무기력에 공감되기도 하고 세계에 일관된 무관심을 보이는 태도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사람이란 참 간사한 것 같다. 환경에 쉽게 동화되어 예전에 다지던 의지 따윈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 소설은 왜 우리는 존재하는가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다. 풍경으로만 존재하는 세계. 그속에서 무기력하게 존재하는 나라는 사람. 뫼르소도 그런 인간이었다. 어머니가 불현듯 돌아가셔도 슬퍼하지 않고, 회사생활을 지속한다. 부품처럼 취급되는 회사생활에 아무런 흥미도 갖지 못하고 또한 아무런 불만도 갖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에게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여자친구가 생겨도 시큰둥, 친구가 생겨도 시큰둥, 매사가 의미없음의 연속이다. 그냥 삶은 그저 살아가는 게 전부다.(귀차니즘에 경도된 현대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방인
이방인_알베르 카뮈. 너무 오래된 책이여서 더럽기 그지 없다..

“이젠 자넨 내 친구야.” 하고 그가 말했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그 말에 놀랐다. 그는 거듭 그렇게 말했고, 나도 역시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그의 친구가 된다 해도 내겐 상관없는 일이었고, 그는 정말로 나와 친구가 되고 싶은 모양이었다.

– 『이방인』 제1부 3장

소설은 2부에서 극적으로 변화한다. 우연찮게 살인사건에 가담하게 된 주인공. 그는 딱히 원한이 있어서 아랍인을 죽인 게 아니었다. 그 유명한 “태양이 뜨거워서”라는 별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로 사람을 살해한다. 법정에서도 정직하게 그 이유로 살해했다고 말하지만, 정상참작의 여지따윈란 없고 그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냉혈한으로 몰릴뿐이다. 뫼르소가 변호인에게 정직하게 말한 일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 그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왜 인생이 다 끝나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생애를 다시 시작해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아무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 준 것처럼,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세계가 나와 닮아 마침내는 형제 같음을 느끼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 『이방인』 제2부 5장

세계에서 겉도는 아웃사이더와 같은 존재였던 뫼르소. 소설이 막바지로 향할수록 세계에 대한 세계를 향한 그의 무관심은 ‘좀 더 살아보기 위한 것’으로 변화한다. 가령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고, 삶을 다시 한번 제대로 살아보고자 하는 것들… 세상은 그를 힐난할지언정 뫼르소의 세계 속에서 그는 진정한 영웅이다 할 수 있다. 적어도 자기 자신을 속이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종교에 귀의하라는 사제의 제안도 거부한 채, 그는 오로지 ‘진실’만을 향한다. 거짓말이 횡행하는 세상 속에서 오직 ‘진실’만을 안고 간 그의 신세는 사형수였지만, 자신의 ‘존재’에 귀기울이며 ‘살아있음’을 깨닫고 무기력했던 과거와는 달리 행복함을 느끼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짓는다.


오늘도 나는 무기력한 하루를 보냈다. 흡사 소설 제1부에 등장하는 뫼르소의 삶과 비슷했다 할 수 있는데, 이런 내가 실존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다짐하게 된다. 규칙이나 관습과 같은 사회의 질서를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인가, 비록 뫼르소처럼 아웃사이더가 될지언정 나만의 반골 정신으로 내 내면에 귀기울이고 솔직하게 살 것인가. 물론 후자로 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 더 솔직해지고 조금 더 활력 있는 내가 되어보길 바라며, 오늘 포스팅을 마쳐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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